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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덕빈 워크샵 하이라이트

project ensemble morph

by 신문선 2021. 8. 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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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ensemble morph 8 22 서울에서 있을 연주회 < 곳의 바깥에서, 다시> 위해 6월과 7 사이  번에 걸쳐 온라인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워크샵에서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의 글은 2021 6 6 저녁 7시에 있었던 작곡가 이덕빈의 워크샵 <한계에서> 내용  일부를 발췌해 편집한 것입니다.

 

 

작곡가 이덕빈 <한계에서>

 

저는  곡들에 많은 것들을 담으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크게  가지 측면으로 설명될  있습니다. 첫째로 감정적 또는 시학적 측면에서 설명을 드리자면,  작품은 냉소와 해학을 담고 있고 이것은 (서양음악적 맥락에서의) 의미와 전통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작품은 처음 작품을 시작한 무언가를 상실하고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회의주의적 인상을   있는 이런 표면의 안쪽에는  반대의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이런 작업을 통해 의미가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경계에서 의미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 있습니다.

 

meanwhile / English Horn, Bass Clarinet, Contraforte Cello. 

2018 . Ensemble Proton Bern 2019 3 연주 (스위스 베른)

 

 

 

 작품은 오스티나토적인 베이스 멜로디와 대선율의 변주라는 파사칼리아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율은  한번만 등장하고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품은 시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곳으로 흘러갑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작품은 전통적인 폼에서 시작해서 이를테면 악기를 흔드는 행위와 같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악기 연주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변화합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악기와 연주자를 포기하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경계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작품의 기술적 측면은 <음악을 통한 신체적 한계 경험의 시도> 설명될  있습니다. 이는 다시금 인식자(청중) 연주자라는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있습니다. 인식적인 측면에서는 고주파/저주파 대포, 극단적 다이내믹, 정적의 Room-tones 극단적 조명 등을 이용해 청자의 청감각적 한계를 자극합니다. 연주적 측면에서는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될  없는 인간 신체적 한계의 근처에 도달하게 하는 테크닉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기계의 사용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했을   작품은 대다수가 레코딩에서는 곡의 특징들이 전부 상실되기 때문에 공연 현장에서의 직접 경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작품 역시도 레코딩으로 감상이 거의 불가능하니, 곡에 대한 인상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and go / Quartet (Flute, Clarinet, Percussion, Harp), electronics, lights and shakers

2020년 작. Ensemble Adapter  2020 4 연주 (독일 베를린)

 

 

[작곡가는  작품을 위해 LED 조명을 „3 이상“,  가능한 많이 사용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주파대포를 통해 강력한 진동을 생성하는 역할을 하는 서브우퍼를 무한히 많이 사용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연주 역시도 최소 25분부터 끝없이 계속될  있다고 지시합니다. 작곡가는 이를 통해 작품의 기술적 지시 뿐만 아니라 미학적 방향성까지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괄호 안의 내용: 편집자 주

 

작곡가가 and go를 위해 직접 제작한 조명. 200W LED 3개

 

기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실용적 목적을 위해 인간 신체의 활동을 모방해 만들어졌다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에서 저는 기계를 실용적 목적이 아닌 미학적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기계가 신체의 활동을 모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되려 인간 신체가 기계의 미학적 운동을 모방하게 했습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오브젝트에 부착된 셰이커의 움직임은 연주자들에 의해 모방됩니다.

 

또한 하프와 타악기 연주자가 소리의 생성을 위한 동작들을 취하는 파트가 있습니다.  파트에서 연주자들은 상당히 고생해야 하는데  고생은 결과로 [소리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통성의 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 그리고 그것이 최소한 곡의 절반에서부터 영원히 지속될  있다는 점에서 아까 언급한 저의 (의미의 상실과 그것의 한계에서 재미를 보려 하는) 미학적 방향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까지 고려가 되고 있는데, 연주 테크닉, 형식, 구조, 화성, 소리의 조합 등에서  흔적을 찾아볼 있습니다.

 

Prufrock II Robotic piano player electronics (stereo+subs)

2018 . 2018 4 연주 (오스트리아 그라츠).

 

 

모더니즘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T.S. Eliot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 기초해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곡들과는 작품의 결이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연가라는 것은 로맨틱한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 사랑과 인생 자체의 회의, 영혼적 구원의 상실 같은 것들입니다. 특별히  작품을 통해  자전적 작품을 만드는 것에는 어느정도 처음에 설명드린 의미의 상실성이라는 시학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저는 T.S. Eliot 저의 음성을 분석해서 그것을 추상적으로 음악화  피아노에 적용시켰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추상적 반영이라는 것은 기표인 언어적 음성을 알아들을  없는 형태로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기표와 연결되어 있는 기의를 해체한다는 ] Peter Ablinger 스피킹 피아노 작품들 (Deus Cantando A letter from Schoenberg) 경우에는 저와 같은 기계를 사용했는데도 청자가 언어를 이해할  있게 되어있습니다. [기표와 기의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 하지만 저의 작품에서는 기의가 상실됩니다.

 

 작품은 크게  부분으로 나뉘게 되는데,  27분의   전반부의  12분에는 피아노가 나오지 않고 Fixed Media 라디오 드라마만이 등장합니다. 언어를 알아들을  없게 구성된 후반부의 피아노 패시지와는 다르게 부분에서는 언어적 음성, 인간이 연주한 서양 전통음악 그리고 인간 삶이나 자연에 대한 소리 같은 상당히 인간적인 사운드들이 나옵니다. 알고리즘으로 쓰여진 작품의 마지막 7분정도는 피아노 어택, 중간음역대의 일렉트로 사운드와 고주파의 어택으로 구성된 제스쳐가 반복됩니다.  부분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끝나지 않고 계속될  있다는 컨셉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가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그 경계에서 의미를 확장...

 

 

질문 : 사람이 인지할  있는 한계에 대한 작업을  년간 지속적으로 하고 계신데,  작업을 시작하게  계기나  작업 이후 본인의 음악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덕빈 : 저는 음악을 늦게 시작한 케이스입니다. 저는 작곡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자신의 한계이든 인간 사회의 한계성이든 어떠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 작곡의 목표가 한계를 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넘는다는 목표에 작곡이 추가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서 졸업 하고 독일에 와서야 곡을 제대로  봤습니다. 독일에 와서   작품은 앙상블 작품이었는데 New Complexity적인 요소를 가진, 연주자의 한계를 시험하는 곡이었습니다.  작품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다른 방향성을 찾게 되며 지금은 악보상으로는 상당히 심플한 작품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간 신체의 한계의 극복을 소망하며  단순성 속에서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더 집중하는 작업을 하고있습니다.

 

질문 : 전통과의 관계나 한계에 대해서는 이해가 됐는데, 많은 곡에 전반적으로 등장하는 tutti – solo 구성과 한계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덕빈 : 일단  작품에는 한계 이외에도 다른 측면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tutti 사용은 사실 한계의 극복보다는 다른 측면과  관련있습니다. Tutti 사운드를  들어보시면 전통적 의미에서의 좋은 앙상블 사운드가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의도적으로 tutti 흐트러트리며 전통적 의미의 상실을 시도했습니다.

 

질문 : 여러 매체들을 사용하고 계신데,  사용에서 어느정도 post-human 요소가 느껴집니다. 지금은 기계가 연주자와 분리되어 작동하는  같은데, 이후에는 기계와 인간을 융합하는 방향으로도   의향이 있으신가요?

이덕빈 :  작품에는 의도적으로 사운드가 정리가 안되어 있고 어느정도 따로 놀고 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성향의 반영이고 아무래도 그것이 기계사용에서도 반영이 되어 있는  같습니다. 기계까지도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중입니다.

 

 

이덕빈은 서울 경희대학교 작곡과, 드레스덴 국립음대 작곡과, 그라츠 종합예술대학 컴퓨터 음악과를 졸업한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며 현재 오스트리아 Graz  거주 중이다최근 그의 작업들은 인간 신체 한계의 대한 실험 (인식과  사용), 로봇의 미학적 이용냉소주의 그리고 종교의 반영을 포함한다그의 예술적 접근은 특정한 선을 한정짓지 않고 악기인간 신체기관사물전자음향조명기계 등의 모든 미디어를 사용한다

그의 작품은 Das Theater um die Mushiiik Bern, Dresdner Anatomie, International young composers Academy in Tchaikovsky City, Tonlagen Festival Dresden, Donaueschinger Musiktage, International master classes for new music COURSE in Kiev, International Summer Couse for New Music Darmstadt, Lucerne Festival, ZKM Festival in Karlsruhe, Korean Cultural Center Berlin, Adoption Berlin  유럽 각지에서 다양한앙상블  연주자들 (Ensemble Adapter, Ensemble Recherche, Neue Vocalsolisten, Moscow Contemporary Music Ensemble, Auditivvokal, Ensemble Nostri Temporis, Vertigo Ensemble  다수) 의해 연주되었다.

이덕빈은 또한 Ad Infinitum Stipendium (Lübeck), 예술가 장학금 (서울), AAI 장학금(Graz) 등의 다수의 장학금을 지원 받았으며 2017년 Künstlerhaus Eckernförde로부터 예술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그의 최신작 <소비된 변주곡들> (Consumed Variations) 발표된다.

작품설명
제목에서   있듯이  작품은  사회의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음악 소비 문화를  관점에서 다시   음악적 또는 무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문화에 대한 가치판단은 지극히 개인적 또는 주관적인 것이므로 결코 그것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소비하며 듣는 음악의 형태, 또는  문화 자체가 과연  미래에 어떤  다른 (긍적적 또는 부정적인) 형태로 우리를 맞이할까 하는 물음과 상상에서부터 시작  작품이다.
작품의 구조와 구성은 간단하게 변주곡들의 변주곡들이라고 정의할  있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6개의 기존 변주곡들의 짧은 발췌들과 1개의 새로운 광고에 의한 9개의 일종의 변주곡들과 3 개의 변형된 광고들이라  있다. ‘Themes (주제들)’  명명한  부분은 아주 간단한 관중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음악작품들을 소비 하는 행위 (‘음악회적으로 재구현된) 만들어진 꽤나 가변적 형태의 주제들 (또는  파편들’)  다른 방법으로  변주곡들에서 얽히게 된다.

 

 

 

글, 편집 / 신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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